부관참시(剖棺斬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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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剖棺斬屍)

by 정민4785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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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이미지 출처 = 국가보훈부( 전 국가보훈처)

 

 

지금까지 본 블로그는 고사를 가지고 있는 한자성어를 '고사성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글을 올렸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카테고리에 한자성어를 올리려고 한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하루, 이틀... 지나오며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이렇게 몇 자 글을 남기고자 한다.

 

▣의미

부관참시(剖 : 쪼갤 부, 棺 : 널 관, 斬 : 벨 참, 屍 : 주검 시)에서 '부관'은 무덤을 파는 것을 뜻하고, '참시'는 시체를 베는 것을 뜻한다. 즉, 부관참시는 무덤을 파서 시체를 꺼내어 참수하는 형벌을 말한다. 이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그 시체에 극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유래

사실 여러 기록을 살펴보지만 딱히 언제, 어떻게 이 부관참시라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부관참시'의 유래는 중국의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에는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이었던 초장왕이 죽은 그의 아버지 초목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참수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부관참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전해진다.

 

초장왕은 초목왕의 후궁이었던 여희와 사랑에 빠졌다. 여희는 초목왕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었지만, 초장왕은 그녀를 용서했다. 그러나 여희는 초장왕의 왕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다. 이를 눈치챈 초장왕은 여희를 처형했다. 여희의 죽음에 분노한 여희의 아버지는 초장왕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는 초장왕의 아버지인 초목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참수했다. 이 사건은 초장왕과 여희의 사랑과 음모를 다른 <초사(楚辭)>의 대표작인 <이소(離騷)>에도 언급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사화(士禍)가 일어날 때마다 부관참시가 자주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산군 때 김종직, 한명회, 정여창, 남효온 등 사림파의 명망가들이 부관참시를 당했다.

 

연산군은 즉위 초부터 사림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1498년에는 사림파의 선두주자인 김종직을 '성균관 퇴출'이라는 죄목으로 부관참시했다. 이어 1504년에는 폐비 윤씨의 복위를 둘러싸고 사림파와 신진사대부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자, 한명회, 정창손, 남효온 등 사림파의 주요 인사들을 부관참시했다. 연산군의 부관참시는 그의 폭정과 독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리

오늘날에는 부관참시는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 형벌이다. 죽은 사람에게까지 형벌을 내리는 극형으로, 매우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로 여겨진다.

 

최근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육사 내 항일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을 철거하여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절차를 추진 하고 있다. 지난 8월 28일에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 청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도 함께 철거한다고 밝혔다.

 

이로인한 논란은 크게 붉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런한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성 장군까지 지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다. 신원식 의원은 지난 2022년 정기국회 국정감사 중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자유시 참변에서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 데 주역이었다. 소위 소련군이 된 이분을 굳이 흉상을 세우고 육사에 만들라고 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발언 및 지적을 했다. 2022년 11월에 국회 지적사항이라는 명분으로 육사가 흉상의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과는 관계가 없고, 빨치산이라고 하는 말도 구 소련의 스탈린에 의한 공산주의와는 관계가 없는 왜곡된 주장에 휩싸여 있다. 북한의 김일성 마저도 "홍범도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하며 배척했다고 전해진다.

 

홍범도 장군은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되면 꼭 고국에 데려가라"고 유언을 남기셨는데, 해방된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이념적 대립 속에 그 유언을 한 세기가 다 지나서야 지킬수 있게 되었다. 홍범도 장군의 항일 독립투쟁에서의 그 혁혁한 전공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고, 더불어 부인은 남편의 의병 활동을 빌미로 고문 끝에 돌아가시고, 아들 두 분 모두 항일 독립투쟁을 하셨다. 이러한 분을 어렵게 조국으로 모셔왔는데 왜곡된 주장을 펼치며 그 공을 폄하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부관참시(剖棺斬屍)'라며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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